껍질째 먹는 사과 - 길벗사과농원 방문을 환영합니다.



제목: 게으른 농부
이름: 길벗


등록일: 2020-04-19 22:32
조회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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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속초에 가다가 동해고속도로에서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오랫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뒤늦은 거름 내기를 지난 주에 이틀에 걸쳐 다 마쳤습니다. 이 거름은 소똥과 참나무 수피를 섞어 1~2년 동안 뒤집어주어 완전히 발효된 것을 매년 사과밭에 내고 있습니다.

올 봄 일은 많고 속도는 더디고... 거름도 뒤늦게 주고 전정도 그저께 겨우 나머지를
다 마쳤습니다.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 인지상정.
언제나 아들이 와서 같이 이 일을 할런지, 그때를 일단 기대하면서
올 봄도 이제 지나갑니다.

일을 몰아서 하는 버릇이 쉬 고쳐지지 않아서 할 일이 있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거의 움직이지 않다가 발동이 걸려야 며칠 몰아서 일을 해치웁니다.
그러면 반드시 몸에 무리가 오고 예전엔 그래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하루 쉬어야 몸이 회복됩니다.

그럴때면 목욕이 최곱니다. 사우나는 싫어하는데 탕 속에 들어가는 것은
기분 전환이 되고 근육도 풀어지는 느낌을 받아 피곤함이 많이 가시는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가 양양, 속초까지 뚫려 이제 농장에서 40분이면 속초에 갈 수 있습니다.

때때로 속초에 온천욕을 하러 갈때면 거의 매번 이웃인 예술가 박 선생 내외와 함께
갑니다. 오후 늦게 떠나면 저녁도 해결하고 올 수 있습니다.
매일 닭을 돌보고 계란 작업을 하는 안사람을 위해서도 가끔은 이렇게
나들이를 해야 합니다.

올 봄, 인력 부족이 매우 심각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궁벽진 촌에서도 동남아 인들이 밭 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데
코로나 여파와 법무부의 강제출국 여파로 시골에 외국인력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이곳 농부들의 걱정이 대단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부부 가족 노동력만으로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라 외부 노동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제대로 된 농사를 짓기
어렵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나라 농촌이 이렇게 많이 변했습니다.
만약 이런 외국인 노동력을 이용할 수 없다면 아마 농산물 대란이
진즉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값이 오르면 수입하면 된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번 봄은 코로나 19 사태로 급식 납품이 이루어지지 않아 농민들 가운데
친환경 급식 납품을 하는 농가는 큰 일입니다. 하긴 사회 모든 부분이 다 어려우니
농민만 어렵다고 내세우지도 못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또 미약한 존재이고 또 사회의 발전이라는
것도 이런 사태 앞에서는 그간의 문명과 제도가 다 무슨 소용인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제 오늘 페이스북을 보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은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공인'들은 더욱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에 조심을 하고 특히 민심을 세심하게 살피는
감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학력과 지식과 경력이 좋아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질박함이 없다면
인심은 그것을 바로 알아봅니다. 오만하고 은근히 자신을 내세우는 자세는
우리같은 장삼이사들이야 때로 객기를 부린다고도 하겠지만
정치에 나선 이는 무조건,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겸손이 몸에 배어야겠습니다.

농민을 대표하겠다고 정치에 나서 저 남쪽 동네 어디에서 이번에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한 어떤 이를 보면서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한 마디 보탰습니다.
자기 고향에서 30년 가까이 정치를 하겠다고 일찍이 내려와 기웃거렸지만
그 꼴난 조합장 한번 못해보고 매번 퇴출되다가 근처 동네로 옮겨 이번에
지역구로 나왔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지역은 특정 정당이 아니면 안되는 지역이라는 자기 위안을
자타가 서로서로 인정하면서 늘 반대당으로만 나오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역도 안타깝고 그 친구의 인식도 안타깝고 자기 고향이라는 그 지역에서
그 친구가 받고 있는 평판도 다 안타까웠습니다.

제 홈피에 왜 일면식도 없는 그 친구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농민 어쩌구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할 무렵 정대철 의원이
자신의 보좌관으로 오기를 사람을 넣어 언질을 주었는데 면담을 가서
직접 저는 정치할 뜻이 없고 그리고 제 그룻도 정치할 사람이 못되어서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전공은 아니지만 문학을 참 좋아했고 그래서 써클 지도교수였던
정현종 교수님(시인)을 따라 늘 선배, 친구들과 몰려다니다 보니 어느 틈엔가
정치하는 부류, 판검사하는 부류를 제일 아래로 보는 버릇이 들어버려서
지금도 세상 권력과 돈이야 그네들이 다 가지고 있겠지만 도무지 그런 사람들을
제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못난 버릇이 있습니다.

다만 문재인처럼 희귀한 예도 있으니 그야말로 이것은 드물어도 아주 드문 예가
되겠고 나머지는 한 두마디 내뱉는 말을 들어보면 그 뱃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다들 설익고 되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래서 농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 또는 윗질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과 몸의 자유가 거의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하긴 저도 직장 생활을 십년 넘게
해서 소위 회사조직에 있어보았지만 그래서 나이 서른 아홉에 굳이 시골로
농사 짓자고 내려왔지만 그리고 두 아들을 다 풀무농고에 보내서 농사꾼이
되라고 했지만,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가 겪은 가장 좋은 것으로 제 자식에게
추천을 해주지 않겠습니까.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는데 농부는 그저 맛있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 몸 바쳐
만들면 그뿐, 그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삶의 보람이라고 봅니다.
다만 시장에서 좀 제값을 받으면 좋겠는데 그건 또 다른 세상의 구조가 있으니...

사람이 은퇴할 때가 있고 또 누구나 예외없이 언젠가는 늙어 돌아간다는
불변의 사실이 있으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미친듯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끔 아름다운 광경과 인생의 순간을 맛보는 황홀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더럽고 기괴하고 불행한 세상이라는 것을 떠올릴 때 그때 우리는 죽음이 그래도
이 모든 것을 다 덮어주고 잊혀지게 해준다는 것에 감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또 취업을 하고 있는 둘째 민이가 모레 잠시 귀국했다가 5월 말에
다시 돌아갑니다. 오면 5월 4일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그 후 집에 잠시 들렀다가
제 볼 일을 보고(주고 사람 만나는 일) 가겠지요. 대학원을 또 간다고 하니 다시
독일 체류가 2~3년 더 이어질 것 같습니다.

나는 어서 돌아오라고, 와서 농장을 같이 꾸려나가자고 말을 합니다만 다 큰 아들이라
제 나름의 계획과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기대하고 또 은근히 부담만 주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시는 모든 길벗 님들 올 봄에는 저희 사과밭에 사과열매 솎기 작업 도와주러
많이 오시길 부탁드립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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